영화 대부 1편(코를레오네, 마이클, 복수)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가 된 뒤로 영화 대부를 다시 봤을 때,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비토 코를레오네가 마이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도 처음엔 그냥 지나쳤는데, 그날은 목이 메었습니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더군요.
코를레오네 패밀리,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은 이름
솔직히 이건 처음 봤을 때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딸의 결혼식 장면이 펼쳐지는데, 화려한 잔치 뒤편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부에게 부탁을 하러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처음엔 그냥 강력한 보스 묘사구나 싶었는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화에서 패밀리(Family)라는 단어는 이중적 의미를 갖습니다. 혈연으로 묶인 가문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피아 조직 그 자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비토 코를레오네에게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세계였죠.
조직 구조도 생각보다 훨씬 정교합니다. 보스 아래에는 콘실리에리(Consigliere)가 있습니다. 콘실리에리란 보스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최측근 고문으로, 전략을 짜고 보스가 직접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리인 역할까지 맡는 자리입니다. 그 아래엔 카포레지메(Capo Regime)가 있는데, 카포레지메란 독립된 부하 조직을 거느리고 지휘하는 중간 지휘관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군대로 치면 대대장급이죠.
이 구조 덕분에 보스가 정확히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왜 내렸는지는 핵심 간부 몇 명 외에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게 조직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고요.
비토의 자식들을 보면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장남 소니는 용맹하지만 충동적이고, 차남 프레도는 능력이 없어 늘 깍두기 신세입니다. 막내딸 코니는 출가외인 취급을 받고요. 그리고 셋째 마이클은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반항한 아들이었습니다. 자원 입대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가족과 거리를 두며 정직한 미국인으로 살고자 했죠. 아버지의 사업을 혐오한다고 공공연히 밝혔던 바로 그 아들이, 결국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는 게 이 영화의 핵심 아이러니입니다.
마이클이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돌이킬 수 없었던 선택들
제가 직접 여러 번 다시 봐도 느끼는 건데, 마이클이 변해가는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무섭습니다. 억지스러운 서사가 아니라, 어떤 인간이든 저 상황이라면 저렇게 될 수밖에 없겠다는 납득이 됩니다.
전환점은 아버지가 저격당한 날 밤 병원 장면입니다. 경찰서장 맥클러스키가 뇌물을 받고 경호 인력을 강제로 해산시켜버렸고, 마이클은 우연히 병문안을 왔다가 텅 빈 병원에서 홀로 아버지를 지키게 됩니다. 그 순간 마이클의 내면에서 뭔가가 결정적으로 바뀝니다. 가족과 거리를 두던 아들이 아니라, 가족을 지켜야 하는 아들이 된 거죠.
이후 마이클이 솔로조와 맥클러스키를 직접 처리하겠다고 나섰을 때, 사실 조직 안에서는 아무도 마이클을 믿지 않았습니다. 보스의 아들이라서 회의실에 있을 수 있었을 뿐, 외부인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오메르타(Omertà)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오메르타란 마피아 세계에서 목숨을 걸고 조직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겠다는 침묵의 규율로, 시칠리아 출신이어야만 이 규율에 길들어 있다고 여겼습니다. 마이클은 그 바깥의 인물이었죠.
시칠리아에서의 생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도피 중에 아폴로니아를 만나고 결혼까지 한 마이클은 잠깐이나마 진짜 평화로운 삶을 삽니다. 그런데 그 행복이 차 폭발로 산산조각 납니다. 임신 첫 달의 아폴로니아가 마이클을 대신해 그 차에 탔던 겁니다. 저는 이 장면이 볼 때마다 가장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마이클에게 이 세계는 도망치려 해도 도망칠 수 없다는 것, 행복을 잡으려 하면 반드시 그것을 빼앗긴다는 것을 이 장면이 가장 냉정하게 보여주거든요.
마이클이 복수를 준비하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배신자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비토가 임종 직전 마이클에게 남긴 마지막 조언이 바로 이것이었죠. 바르지니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자가 배신자라고. 그리고 그 배신자는 테시오였습니다. 비토에게도 클레멘자보다 더 신임받던 카포레지메가 결국 조직을 팔아넘긴 겁니다. 클레멘자와 테시오 두 인물을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 클레멘자: 비토의 창립 멤버이자 직속 카포레지메. 끝까지 코를레오네 패밀리에 충성했으며 마이클의 집무실을 찾아와 손에 입을 맞추며 돈 코를레오네로 인정합니다.
- 테시오: 브루클린을 관할하던 카포레지메. 마이클이 바르지니를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배신을 선택했으나, 결국 처형당합니다.
- 카를로 리치: 코니의 남편이자 소니의 죽음에 결정적으로 가담한 내부 배신자. 마이클이 끝까지 망설이다가 자백을 받아낸 뒤 처형합니다.
루카 브라시의 허무한 죽음에 대해서는, 전통적 마피아의 끝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해석을 찾아보지 않고 영화만 보면 거의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영화 안에서 그 상징성이 충분히 구현되지 못한 게 사실이거든요. 바닥 최고 실력의 암살자가 끈 하나에 목이 졸려 죽는 장면은 충격적이긴 한데, 그게 한 시대의 종말을 뜻한다는 무게감까지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이건 영화의 아쉬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실제로 이탈리아계 미국인 단체가 영화 제작에 협조하는 대신 "마피아"와 "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 마피아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IMDb, The Godfather Trivia)
아버지를 닮아가는 마이클, 그 완성의 의미
제 경험상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봤을 때 전혀 다른 장면이 마음에 남습니다. 처음엔 총격과 복수 장면이 압도적이었는데, 지금은 마당에서 비토와 마이클이 나누는 대화가 가장 오래 남습니다.
비토는 마이클에게 "내가 평생 이 일을 한 건 가족을 위해서였는데, 너까지 끌어들이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당부를 남기죠. 배신자는 반드시 믿을 만한 가까운 사람의 얼굴로 찾아온다고.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이 장면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대사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아이를 집어삼킬 것을 알면서도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무력함, 그게 비토 코를레오네의 진짜 비극입니다.
마이클의 복수 방식은 아버지가 원작에서 남긴 말처럼 철저하게 냉혹합니다. 아카이브 영화 연구자들도 대부를 아메리칸 드림의 어두운 이면을 가장 정교하게 해부한 작품으로 평가합니다. (출처: AFI, 미국영화연구소 100대 영화) 뉴욕 5대 마피아 패밀리의 보스를 세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동시에 처리하는 장면은, 종교와 폭력이 교차하는 연출로 영화사에서 가장 많이 분석된 시퀀스 중 하나입니다. 시퀀스(Sequence)란 영화에서 하나의 테마로 묶이는 연속된 장면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케이가 부엌에서 마이클의 집무실을 바라볼 때, 클레멘자가 정중히 마이클의 손에 입을 맞추며 "돈 코를레오네"라고 부릅니다. 그 순간 케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죠. 마이클이 아니라고 했던 말이 거짓이었다는 걸 그녀도, 관객도 동시에 깨닫는 겁니다. 이것이 대부 1편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성공할수록 자신과 주변이 불행해져 가는 아이러니, 저는 이게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