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끝줄 소년 (연기력, 흡입력, 복수동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끝줄 소년》은 6부작, 총 러닝타임 약 6시간짜리 시리즈입니다. 저는 공개 당일 밤에 켰다가 새벽에 다 봤습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표현이 이렇게 딱 맞는 드라마가 언제 있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력이 이 드라마를 명작으로 만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드라마, 스토리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어찌 보면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학생이 교수를 골탕 먹인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대단한 소재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최민식과 최현욱, 이 두 배우가 그 하찮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진짜 배우들 연기 구멍이 없어서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최민식 씨가 연기한 허문오 교수는 열등감(劣等感)에 사로잡힌 인물입니다. 열등감이란 자신이 타인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뜻합니다. 허문오는 동기 김수훈이 성공한 작가로 승승장구하는 동안 자기 자신은 첫 소설 이후 붓을 꺾은 인물인데, 심지어 그 동기가 자신의 짝사랑이었던 여성과 결혼까지 했습니다. 이 복합적인 설정이 캐릭터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데, 최민식 씨는 그 그늘을 '찌질함'과 '광기'가 동시에 묻어나는 연기로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특히 후반부에 롱테이크(Long Take) 씬이 있었습니다. 롱테이크란 컷 편집 없이 카메라를 오랜 시간 돌리는 촬영 기법으로, 배우의 감정 변화를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그 장면에서 최민식 씨의 얼굴 클로즈업이 이어지는데, 왜 사람들이 최민식 최민식 하는지 그 순간 제대로 알겠더라고요. 연기 못하는 배우였으면 그냥 지루한 정적이 됐을 씬인데, 감정 표현이 너무 섬세해서 감탄하면서 봤습니다.
최현욱 씨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이강이라는 캐릭터는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천진난만해 보여야 하는, 굉장히 다루기 까다로운 역할입니다. 마지막에 허문오를 피해 도망치면서 살짝 비웃는 표정 하나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복수에 이를 갈았던 게 아니라, 그냥 어른을 재미로 긁어본 어린 학생의 표정 그 자체였거든요. 그 표정 하나로 캐릭터의 모든 게 설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스피싱 같은 드라마, 흡입력의 정체
어떤 드라마를 보면서 '이게 진짜야, 가짜야?' 하고 계속 의심하면서 본 적 있으신가요? 《맨 끝줄 소년》이 딱 그런 드라마입니다. 어느 댓글에서 '보이스피싱 같은 드라마'라는 표현을 봤는데, 정말 절묘한 비유였습니다. 매회 긴가민가 하면서 '이게 이강의 창작인가, 실제 벌어지는 일인가' 의심하면서 계속 보게 됩니다.
이 흡입력의 핵심은 메타픽션(Metafiction) 구조에 있습니다. 메타픽션이란 소설 속에서 또 다른 소설 창작 과정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는 서사 기법으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리는 방식입니다. 이강이 쓰는 소설이 허문오의 현실과 겹치고, 독자와 시청자는 어디까지가 이강의 상상이고 어디서부터 실제인지 계속 추적하게 됩니다. 이 구조 자체가 드라마의 가장 큰 재미입니다.
연출도 이 흡입력을 뒷받침합니다. 특히 세윤이네 부모의 얼굴이 허문오의 상상 속 인물에서 그의 동경과 증오의 실제 대상으로 확 전환되는 장면은 제가 직접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복잡한 설명 없이 한 번의 편집으로 허문오의 심리 전체가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속도 조절도 인상적이었는데,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늘어지지도 않는 템포를 6부 내내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베테랑 연출자와 경력이 짧은 연출자의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지점은 있었습니다. 3화쯤에 이강이 장미 3송이를 들고 허문오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대사를 살짝 절면서 강제 스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허문오가 소설에서 했던 말을 이강이 그대로 뱉는 순간, 결말까지 줄거리가 한 번에 개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살짝 맥이 빠진 채로 봤던 게 사실입니다. 흡입력이 워낙 강했기에 더 아쉬웠습니다.
이강의 복수 동기, 얼척없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 드라마를 두고 가장 많이 나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강이 허문오한테 그렇게까지 한 이유가 너무 약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다르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초기 애착 손상(Early Attachment Injury)의 관점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초기 애착 손상이란 어린 시절 신뢰했던 대상에게 상처를 받았을 때, 그 경험이 이후의 관계와 행동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강은 평소에도 다른 애들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마음을 닫은 채 살아온 아이였습니다. 그런 이강이 난생처음으로 속 이야기를 꺼내고 마음을 열었는데, 그 순간 허문오의 말 한마디가 꽂혔을 때의 충격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허문오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허문오는 동기 김수훈의 말 한마디에 20년 동안 소설을 못 쓸 정도로 흔들린 사람입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이 드라마는 두 인물을 통해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맥락을 함께 읽으면, 이강의 동기가 완전히 얼척없다고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제가 느낀 이강의 복수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게 아니었습니다. '어라, 저 교수 그 사람이네? 함 건드려볼까?' 하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도파민에 잠식되어가는 허문오를 보면서 재미가 붙어 스케일이 커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우연한 사고가 얽히면서 '어? 이게 되네?'로 이어지는 구조가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읽혔습니다. 《맨 끝줄 소년》을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한 원작 희곡의 서사 구조에 대해서는 리디북스 원작 소개 페이지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진짜 주제, 열등감과 욕망
《맨 끝줄 소년》을 보면서 계속 마음에 걸린 게 하나 있습니다. '저 교수 참 찌질하다'고 혀를 차다가, 어느 순간 '근데 저 심리가 나한테도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 겁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허문오라는 캐릭터는 그릇된 열등감(劣等感)의 전형입니다. 열등감이 자산이 되려면 '저 사람처럼 되기 위해 나를 발전시키겠다'는 방향으로 흘러야 합니다. 그런데 허문오의 열등감은 저 사람을 깎아내려서 내가 상대적으로 우위에 섰다는 느낌을 얻는 데 소비됩니다. 이 심리가 요즘 온라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과 겹쳐 보였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살을 붙이고, 더 자극적으로 만들고, 거기서 도파민을 얻는 패턴이요.
드라마 속에서 허문오가 이강의 소설에 집착하며 "이건 내 소설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은 그 욕망의 정점입니다. 실제로는 이강이 허문오의 열등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 심리를 이용해 접근한 건데, 허문오는 끝까지 그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착각합니다. 정신의학신문에 따르면 강렬한 욕망 충족 경험은 편도체(Amygdala) 활성화를 촉진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편도체란 감정 처리와 공포, 욕망 반응에 관여하는 뇌의 핵심 구조를 말합니다. 허문오가 이강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신경과학 측면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