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생크탈출(개봉흥행,인물대비,희망의 의미)
직장이 너무 싫어서 월요일 아침마다 이불 속에서 5분만 더, 5분만 더를 반복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매일 그런 기분으로 버텼습니다. 그때 우연히 다시 본 영화가 쇼생크 탈출이었는데, 처음 봤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배경은 감옥인데 왜 이렇게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지, 이 영화가 30년이 지나도 명작 소리를 듣는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개봉 당시 흥행 참패, 그런데 왜 명작이 됐을까
쇼생크 탈출이 처음 극장에 걸렸을 때 흥행 성적은 처참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포레스트 검프와 펄프 픽션이 극장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세 영화 모두 역사에 남은 작품으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쇼생크 탈출이 그 사이에서 거의 묻혀버렸다고 보면 됩니다. 손익분기점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고 하니, 지금의 명성과 비교하면 상상하기도 힘들죠.
반전은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션이었습니다. 개봉 반년쯤 지나 시상식에 이름을 올리면서 뒤늦게 관객들이 극장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재개봉(Re-release)이란 흥행 실패 또는 기념 목적으로 이미 개봉된 영화를 다시 극장에 거는 방식인데, 쇼생크 탈출의 경우 시상식 효과가 일종의 자연스러운 재개봉 역할을 해준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제목 이야기입니다. 원제는 '더 쇼생크 리뎀션(The Shawshank Redemption)', 즉 쇼생크에서의 구원입니다. 리뎀션(Redemption)이란 종교적으로는 죄에서 벗어나는 구원을 뜻하고, 넓게는 상실했던 것을 되찾는 회복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 하나가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국내에는 탈출로 번역되어 들어왔는데, 원제가 진입 장벽이 되어 초반 흥행을 더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탈출보다 구원이라는 단어가 훨씬 더 이 영화의 본질에 가깝습니다. 앤디가 파이프를 기어나가는 장면보다, 그 19년 동안 희망을 지켜낸 과정이 진짜 이 영화의 핵심이니까요.
앤디와 레드, 대비가 아닌 상생으로 완성되는 인물 구도
보통 영화에서 두 인물을 대비적으로 그릴 때는 갈등과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씁니다. 그런데 쇼생크 탈출은 정반대입니다. 앤디와 레드는 서로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고 상생하는 관계로 그려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는 잘 모르다가, 끝나고 나서야 그 여운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습니다. 이게 제가 이 영화를 명작이라고 부르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앤디는 감옥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도서관을 짓기 위해 정부에 수년째 편지를 보내고, 방송 장비실에 자기 혼자 들어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음악을 틀어 교도소 전체에 들려줍니다. 체제 순응(Conformity)이란 사회나 집단의 규범에 맞춰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것인데, 앤디는 쇼생크라는 억압적 체제에 단 한 번도 그걸 선택하지 않습니다. 반면 브룩스는 50년 가까운 수감 생활 끝에 가석방을 받고도 바깥세상을 두려워합니다.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란 개인이 특정 체제나 환경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그 밖의 삶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심리 현상인데, 브룩스가 바로 그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레드는 브룩스의 실패를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희망에 대해 더욱 냉소적이 됩니다. 그래서 앤디에게 직접적으로 경고합니다.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고. 이때 레드가 쓰는 표현이 '파이프 드림(Pipe Dream)'입니다. 파이프 드림이란 아편 파이프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는 비현실적인 꿈을 뜻합니다. 그런데 앤디는 그 말을 듣고도 정말로 파이프를 뚫어냅니다. 온갖 오물이 가득한 하수 파이프를 500야드 기어가면서 말이죠. 레드의 비유가 그대로 현실이 되는 이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명장면 세 가지가 있는데, 보는 분마다 느끼는 게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이렇습니다.
- 앤디가 간수들의 세무 업무를 도와주고 옥상에서 동료들과 햇볕 아래 맥주를 마시는 장면 — 말 한마디 없이도 자유가 뭔지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 레드의 세 번째 가석방 심사 장면 — 두 번을 거짓으로 착한 척하다 불허됐는데, 체념하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허가가 떨어집니다. 진심이 통하는 건지, 아니면 체제가 원하는 인간상이 따로 있는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 마지막 엔딩 — 배를 수리하던 앤디와 레드가 해변에서 만나는 장면. 그 파란 바다 색깔이 레드가 바랐던 것 그대로입니다.
영화 속 미장센(Mise-en-scène)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인물의 위치, 소품 등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영화 기법입니다. 앤디와 레드가 위장관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레드는 그늘 속에, 앤디는 햇빛이 드는 곳에 서 있습니다. 두 사람의 태도 차이가 빛과 그늘로 시각화되는 순간입니다. 가석방 후 레드가 앤디를 찾아 밝은 햇빛 아래 해변으로 걸어나올 때, 그 구도가 완성됩니다. 이런 디테일이 쌓여서 배경만 보면 지루하고 삭막한 영화인데 끝나고 나면 한참 멍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 세상이 쇼생크라면, 희망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그 시절에 이 영화를 보면서 앤디보다 레드에 더 가까웠습니다. 내일이 뭔가 달라질 것 같지 않고, 어설프게 뭔가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보다 그냥 버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브룩스가 서까래 격자 아래서 희미하게 미소 짓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도 거기 있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니체가 말한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 개념과도 닿아 있습니다. 힘에의 의지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극복하고 나아가려는 본능적 충동을 뜻합니다. 브룩스는 자기 보전에 머물렀고, 앤디는 그것을 넘어섰습니다. 그렇다고 브룩스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저는 그 물음에 선뜻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어떤 분들은 브룩스의 삶이 오히려 더 솔직한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요.
가석방 심사 장면을 보면 심사관들의 태도가 10년 단위로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엔 고압적이었던 태도가 마지막엔 훨씬 부드러워지고, 여성 심사관도 배석합니다. 레드가 갇혀 있던 40년 동안 바깥 사회는 그만큼 변해 있었던 겁니다. IMDb 기준 역대 영화 평점 1위(출처: IMDb)를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냥 좋은 영화라서가 아니라 세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앤디가 탈옥에 쓴 성경 속 페이지가 출애굽기(Exodus)였다는 것도 그냥 지나치기 아깝습니다. 출애굽기란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집트의 억압에서 이끌어내는 탈출과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노튼 소장은 성경의 권위를 자기 악행을 덮는 도구로 썼고, 앤디는 그 성경 안에 탈출 도구를 숨겼습니다. 진짜 구원이 어디 있었는지를 이보다 더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영화 연출과 상징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로저 이버트의 당시 리뷰(출처: RogerEbert.com)도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개봉 당시에도 이 영화의 가치를 정확하게 짚어낸 글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결국 이겁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저마다의 쇼생크가 있고, 대부분의 사람은 레드처럼 그 안에서 어떻게든 안전하게 살아남는 방법을 찾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