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와 한국영화(언론 오보,그랑프리,인종차별)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칸 영화제 기사를 볼 때마다 "사상 최장 기립박수"라는 표현을 그냥 믿었습니다. 그게 관례라는 걸 전혀 몰랐거든요. 한국영화가 칸에서 이룬 성과를 제대로 짚어보려다가, 오히려 국내 언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을 왜곡해서 전달했는지를 먼저 확인하게 됐습니다.


칸 영화제 2026 포스터

언론 오보: 우리가 당연하게 믿었던 것들

경쟁 부문(Compétition officielle)이란 칸 영화제의 핵심 섹션으로, 전 세계 영화 중 엄선된 20편 내외가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두고 겨루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오르는 것 자체가 이미 전 세계 영화인이 인정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국내 언론이 이 자리를 보도하는 방식을 보면, 제가 볼 때 솔직히 황당한 수준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바로 "기립박수" 보도입니다. 칸의 공식 상영관인 뤼미에르 대극장(Palais des Festivals)은 2,300석 규모로, 영화가 끝나면 거의 모든 작품에 기립박수를 보내는 게 관례입니다. 관례라는 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기본적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국내 기사는 마치 기립박수 자체가 영화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몇 분이었다는 숫자까지 붙여서 보도합니다. 현장에 있으면 박수를 중간에 끊기도 어렵고, 박수 치는 시간을 재는 행위 자체가 본질을 놓친 것이죠.

노미네이션(nomination)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미네이션이란 특정 후보군을 사전에 공개 발표하는 방식인데, 아카데미 시상식이 바로 이 방식을 씁니다. 하지만 칸 영화제는 다릅니다. 경쟁 부문에 오른 모든 작품이 동등한 후보입니다. 그러니 "황금종려상 후보에 올랐다"는 표현은 칸에서 사실상 틀린 말입니다. 경쟁 부문 진출 자체가 곧 후보인 셈이니까요. 그런데도 언론은 매년 이 표현을 씁니다.

황금카메라상(Caméra d'Or)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습니다. 황금카메라상이란 경쟁 부문에 국한되지 않고, 칸에 초청된 모든 섹션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신인 감독에게 주는 상입니다. 촬영상이 아닙니다.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 헌트가 황금카메라상 후보라는 기사가 나왔을 때, 많은 분들이 촬영상과 혼동한 것도 바로 이 이름 때문이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으니까요.

별점 보도도 짚어야 합니다. 스크린 데일리(Screen Daily) 같은 영화 전문지들이 현장에서 발행하는 소식지에는 비평가 별점이 실립니다. 이 별점이 수상 가능성을 가늠하는 참고 지표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게 곧 수상 예측은 아닙니다.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스크린 데일리 역사상 가장 높은 별점을 기록했지만 상은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심사위원들의 최종 논의는 별점과 별개로 이루어집니다.

그랑프리와 한국영화의 수상 계보

심사위원 대상(Grand Prix)이란 황금종려상에 이은 칸의 2등 상으로, 우리가 보통 그랑프리라고 부릅니다. 그랑프리는 다른 분야에서 보통 최고상을 의미하는 단어라 혼동하기 쉬운데, 칸에서는 명백히 2위 상입니다. 칸의 본상은 총 7개입니다. 황금종려상, 심사위원 대상, 심사위원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이 전부입니다. 아카데미가 한 해 23개의 상을 주는 것과 비교하면 칸이 얼마나 깐깐한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처음으로 경쟁 부문에 진출한 이후 지금까지 이 7개 부문을 전부 수상했습니다. 그것도 한 감독이 세 개를 독식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감독과 배우들이 각 부문을 채워나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개인의 재능이 아니라 한국영화 전체의 저변이 그만큼 단단해졌다는 뜻이니까요.

한국영화 칸 수상 계보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2002년 임권택 감독, 취화선으로 감독상 수상 (폴 토마스 앤더슨과 공동 수상)
  2. 2004년 박찬욱 감독, 올드보이로 심사위원 대상 수상
  3. 2007년 전도연 배우, 밀양으로 여우주연상 수상
  4. 2009년 박찬욱 감독, 박쥐로 심사위원상 수상
  5. 2010년 이창동 감독, 시로 각본상 수상
  6. 2019년 봉준호 감독,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 수상
  7. 2022년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 수상
  8. 2022년 송강호 배우, 브로커로 남우주연상 수상

박찬욱 감독이 3개의 상을 받은 건 대단한 일이지만, 저는 이 목록을 보면서 오히려 그 외의 이름들에 더 눈이 갔습니다. 이창동 감독, 봉준호 감독, 전도연 배우, 임권택 감독. 서로 완전히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게, 단순히 한 명의 천재가 있다는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제가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을 비교해서 자주 생각하는 게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예술적 깊이와 강렬한 개성이 먼저이고 상업적 감각이 그 안에 녹아 있는 느낌이라면, 봉준호 감독은 대중적인 흡입력이 우선이고 예술성이 그걸 떠받치는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두 분 다 확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칸이 유독 박찬욱 감독에게 자주 화답했던 건 어쩌면 칸 자체가 가진 예술 영화(art cinema)적 취향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칸 영화제의 수상 역사와 공식 정보는 칸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festival-cannes.com)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논란: 주최측의 구조적 문제인가

칸 영화제 하면 화려한 레드카펫과 턱시도, 기립박수만 떠오르기 쉽지만, 이면에는 구조적 차별에 대한 논란이 반복해서 불거집니다. 경호원이 특정 인종의 배우나 스태프를 다른 방식으로 제지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포착됐고, 이에 대한 해외 언론과 현장 영화인들의 반응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시각이 나뉩니다. 일부에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한 현장 판단이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천 명이 동시에 움직이는 레드카펫 행사에서 현장 통제는 복잡한 상황입니다. 그런 의견도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저는 개인 경호원의 즉흥 판단이라기보다는 조직적으로 훈련된 행동에 가깝다고 봅니다. 같은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해당 경호원들이 처분을 받지 않고 계속 현장에 있었다면, 그건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운영 구조가 허용하는 행동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칸이 표방하는 예술성과 개방성, 그리고 켄 로치 같은 사회적 약자를 다루는 감독들을 초청하는 영화제가 정작 자신들의 행사에서 차별 논란을 반복한다는 건 아이러니입니다. 격식 있는 드레스코드와 레드카펫 퍼레이드가 칸의 상징적인 품위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품위 뒤에 스놉이즘(snobbism), 즉 배타적 우월감이 작동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칸이 진정한 세계 영화의 축제를 자처한다면, 레드카펫 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그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국제앰네스티나 관련 인권단체들도 영화제 등 대형 문화 행사에서의 차별 문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출처: 국제앰네스티(amnesty.org)). 문화의 힘이 크다는 건 이런 자리에서도 공정함을 보여줄 책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한국영화가 칸에서 7개 부문을 모두 수상한 건 분명히 경이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성과를 제대로 즐기려면, 기립박수가 몇 분이었다는 기사보다 실제로 어떤 영화가 어떤 상을 왜 받았는지를 아는 편이 훨씬 풍요롭습니다. 칸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수상 역사부터 한 번 훑어보시길 권합니다. 한국영화가 걸어온 25년의 흔적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2jBH_4Qf2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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