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영화가 특별한 이유 | 술자리와 롱테이크의 미학

솔직히 처음에 홍상수 영화를 켰을 때는 10분도 안 돼서 끄고 싶었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술잔만 왔다 갔다 하고, 대사는 왜 저렇게 구질구질한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면 묘하게 찜찜하면서도 자꾸 생각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홍상수 영화가 딱 그렇습니다. 이 글은 영화를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이 아닌, 그냥 보다가 이상하게 빠져든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


위선을 보여주는 방식이 남다르다

홍상수 영화를 보면서 제가 가장 먼저 느낀 건 불편함이었습니다. 화면 속 인물들이 고상한 척 예술을 논하고, 사랑을 논하고, 삶을 논하는데 그 밑에 깔린 욕망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이거든요. 그게 불편한 이유는 그 얼굴이 낯선 얼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어쩌면 제 얼굴 같기도 한 얼굴들입니다.

이 감독의 영화를 두고 통념(通念)에 저항하는 영화라고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통념이란 우리가 별로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생각들, 이를테면 "좋은 사람은 이래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이다" 같은 믿음들을 말합니다. 홍상수는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술자리 하나로 가볍게 보여줍니다. 인생이란 초콜릿 박스 같은 것이야, 라고 말하는 순간 삶이 그 말에 갇혀버린다는 생각, 저도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특히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전반부엔 타인의 통념에 피해를 입다가, 후반부엔 정작 자기도 똑같이 타인을 규정해버리는 장면은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걸 도덕적 교훈으로 만들지 않고, 그냥 슬쩍 보여주고 끝낸다는 게 홍상수 영화의 방식입니다. 위선에 대한 폭로를 설교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찍어낸다는 느낌, 그게 제가 이 영화들을 계속 보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왜 맨날 술자리인가 했더니

처음엔 정말로 이 감독이 술을 너무 좋아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영화마다 막걸리, 소주, 맥주가 빠지질 않으니까요. 그런데 술자리라는 세팅(setting)이 갖는 영화적 기능에 대해 생각해보니 납득이 됐습니다. 세팅이란 이야기가 펼쳐지는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말하는데, 감독이 다루고 싶은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이 바로 세팅입니다.

술이 들어가면 사람은 자기 욕망을 감추려는 힘이 조금 풀립니다. 그러면 평소엔 절대 안 할 말을 하거나, 그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다 실패하거나, 혹은 위선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거나 합니다. 홍상수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던 거겠죠. 상투성(常套性)이란 우리가 반복적으로 쓰는 판에 박힌 표현이나 행동 패턴을 말하는데, 이걸 가장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는 공간이 다름 아닌 술자리입니다.

초기 홍상수 영화에서 술자리 다음에는 종종 베드신(bed scene)이 이어졌습니다. 욕망의 발단으로서의 술자리였던 거죠. 그런데 최근 영화들에서는 그런 장면이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 자리에서 나누는 대화 자체, 말의 결이 영화의 핵심이 됩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같은 영화를 보면 술자리가 욕망의 시작점이 아니라 고독이 배어나오는 장소가 됩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술자리가 갖는 의미가 25년 동안 조용히 달라져왔다는 게, 제 눈엔 꽤 인상적입니다.

롱테이크와 줌, 편집 대신 카메라가 움직인다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서 처음엔 롱테이크(long take)라는 말이 낯설었습니다. 롱테이크란 컷(cut) 없이 카메라가 하나의 장면을 길게 연속으로 찍는 촬영 방식을 말합니다. 일반 영화가 수백, 수천 번 컷을 나눠 편집하는 것과 달리, 롱테이크는 한 장면을 끊지 않고 이어갑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롱테이크를 써야 하는 이유는 형식과 철학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컷을 많이 나누면 컷과 컷 사이에 편집의 논리가 생깁니다. A장면 다음에 B장면이 오면, 자동으로 A가 B의 원인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홍상수는 이야기에 단일한 의미가 달라붙는 걸 가장 경계하는 감독입니다. 그러니 편집 자체를 최소화하고, 대신 카메라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장면 전환을 대신하는 거죠.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중국집 장면이 6분이 넘는 단일 롱테이크로 촬영됐다는 걸 알고 나서, 저는 그 장면을 다시 찾아봤습니다. 배우들이 대사를 치면서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은 어떤 순간들이 스며있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게 연기인지 그냥 그 사람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그 느낌, 그게 홍상수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 다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줌(zoom)에 대해서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줌이란 카메라 렌즈를 조절해 피사체를 가깝게 당기거나 멀리 보이게 만드는 기법인데, 극장전이라는 작품부터 홍상수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카메라가 이동하지 않고 렌즈만 당기는 방식이라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 어색함 자체가 오히려 영화를 영화처럼 보이지 않게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편집을 촬영으로 대체한다는 표현이 여기서도 딱 맞습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초기와 최근의 카메라 방식을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1. 초기 영화(강원도의 힘 등): 고정 카메라(fixed camera), 카메라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는 정적 촬영 방식
  2. 중기(극장전 이후): 줌 인·아웃 등장, 카메라가 인물 사이를 렌즈로 넘나들기 시작
  3. 최근 영화: 패닝(panning, 카메라를 옆으로 수평 이동하는 기법)과 줌을 결합해 한 쇼트 안에 여러 인물의 감정선을 담아냄

이 변화를 알고 나면 그냥 밋밋해 보였던 화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홍상수가 앵글이 예쁠수록 나쁘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그 밋밋함이 의도된 선택이라는 게 납득됐습니다. 예쁜 앵글은 우리가 이미 봤던 이미지에 대한 고정관념을 재현하는 것이라는 시각, 루이스 부뉴엘이 촬영 감독이 맞춰놓은 멋진 앵글을 보자마자 카메라를 180도 돌려버렸다는 일화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홍상수는 그 계보 안에 있는 감독입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즐기는 방법에 대하여

홍상수 영화를 두고 맨날 똑같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고,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힌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엔 전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세 편, 네 편을 넘어가면서 반복과 차이라는 개념이 몸으로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반복과 차이란 같은 구조나 장면이 되풀이되면서도 그 안에서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는 홍상수 영화의 핵심 형식 원리입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처럼 똑같은 하루를 두 번 보여주는 구성이 대표적입니다. 1부에서 봤던 장면이 2부에서 살짝 다르게 반복될 때, 관객은 그 차이를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이 능동적 참여(active participation)가 홍상수 영화를 다른 영화와 구별 짓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플래시백(flashback)이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때 꽤 흥미로웠습니다. 플래시백이란 현재 이야기 중간에 과거 장면을 삽입해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기법인데, 홍상수 영화에서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한 편을 빼면 등장하지 않습니다. 플래시백을 쓰는 순간 그 인물이 왜 저러는지 자동으로 설명이 붙으니까요. 그 설명 자체가 이야기를 하나로 고정시켜 버리는 것, 홍상수가 가장 경계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국내외에서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꾸준히 국제영화제에서 주목받아왔습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도망친 여자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한 것이 대표적이며(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 그 기자회견에서 감독 본인이 최대한 의도를 갖지 않으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영화에서 상징과

메시지를 억지로 심어 넣기보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따라가려 한다는 말이 오히려 홍상수 영화를 이해하는 열쇠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 지루함 속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합니다. 저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예전에는 '왜 이렇게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영화를 만드는 걸까'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대화와 침묵 속에서 사람이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을 보게 됩니다. 어쩌면 홍상수 영화는 특별한 사건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는 외면하고 지나치는 일상의 모순을 가장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 홍상수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의 결, 그리고 그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천천히 따라가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한 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처음에는 밋밋하게만 보였던 그 세계가 이상하리만큼 오래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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